[송진희의 커피이야기 #2] 커피와 커피하우스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05-17 21:30:58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문화, 예술, 혁명을 잉태한 공간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오스만 제국(현재의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1475년 개점한 ‘키바 한(Kiva Han)’이다. 커피 문화가 유럽에 전래된 것은 17세기이다. 아랍과 이슬람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커피를 마셨던 탓에, 기독교 문화가 지배했던 유럽인들은 커피를 “이교도들이나 마시는 음료”라고 생각했으며, 커피는 실제로 ‘이슬람교도의 와인’이라고 불렸다.


이탈리아의 무역상들이 커피를 유럽으로 들여왔지만 문화적 거부감이 너무 커서,원래는 유럽 전역에 전파되기는 어려웠다. 커피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것은 교황 클레멘트 8세였다. 클레멘트 8세의 측근들이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선포해달라”고 청원했지만 커피를 마셔본 교황은 “악마의 음료라기에 이건 너무 맛있으니 커피에게 세례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즈음해서 커피가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다.



1629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럽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탄생한다. 영국 런던에는 1650년, 프랑스 파리에는 1672년 첫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커피하우스는 이후 유럽 문화와 예술과 정치와 혁명의 중심지가 되게된다.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기 전 사람들은 선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질병과 다툼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등장한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음료를 파는 건전한 공간. 커피하우스에서 런던의 신사와 파리의 부르주아들은 가십과 패션과 시사와 정치와 스캔들, 철학과 자연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국 기준으로 커피값 1페니만 있으면, 누구나 커피하우스에 입장해 정치와 사회적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 정치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죽치고 앉아서, 비현실적인 정치적 견해를 퍼뜨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커피하우스는 근현대 유럽의 경제와 정치, 학문이 탄생한 곳이다. 영국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이라고 하는 과학자들의 모임인 ‘왕립학회’도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왕립학회 초기 회원이었던 아이작 뉴턴과 로버트 보일, 로버트 훅 등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토론한 내용은 근대과학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로이드’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에는 상인들과 선원들, 해운업계 사람들이 모였다. 영국 대형 보험사 로이드의 시초가 이렇게 시작이 된다. 또한 세계적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도 커피하우스로부터 시작된다.



커피하우스는 혁명을 잉태한 공간이다. 파리에서 커피하우스는 볼테르와 장 자크 루소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아지트 였다. 볼테르가 즐겨 찾았다던 ‘르 프로코프’는 1686년 문을 열었는데, 아직도 파리에서 영업중 이다. 귀족들의 폐쇄적인 살롱 문화와 달리, 누구나 찾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피하우스는 평등과 공화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커피하우스에서 민중들을 만나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개혁의식을 키워 간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 독립혁명의 근거지 역시 커피하우스 이다. 미국에서는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차 대신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차 문화 대신 커피 문화가 발전한다. 미국의 첫 커피하우스는 1689년 보스턴에서 문을 열었고, 이곳 역시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을 나누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

민중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정치 얘기를 하자, 여러 왕과 술탄들이 커피하우스 문을 닫으려 시도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영국의 왕 찰스 2세 였다. 1675년 12월 찰스 2세는 다음해인 1676년 1월 10일을 기해 영국의 모든 커피하우스를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이 모여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바람에 정치에 대한 뜬소문이 확산돼 국왕의 명예가 훼손되고 사회가 혼란해진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저항이 강력했고, 런던뿐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져 찰스 2세의 칙령은 결국 1676년 1월 초 철회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이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파리 생제르맹 데프레에서 1880년대에 영업을 시작한 두 카페, ‘카페 레 되 마고(Café Les Deux Magots)’와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알베르 카뮈, 파블로 피카소, 시몬느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지식인들과 작가, 미술가들의 아지트였다. 파리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한 이 커피하우스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 같은 문학작품과 영화에서도 숱하게 언급된다. 두 커피하우스는 여전히 파리에 남아 있다.

[저작권자ⓒ 기업경제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