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주간프리즘 #11] 바보들의 행진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06-24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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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는 지능이 부족하고 행동도 어리숙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바보는 어떤 사람이라도 경계심을 풀게 하여 상대를 방심하게 만든다. 의구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 자신의 편에 서게 만든다.

바보에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지녔지만, 겸양의 미덕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자처한 바보'가 한 부류이며, 자신이 바보인지 인지하지도 못할 뿐더러 잘난 척하며 똑똑한 인간인 척 바둥거리면서 바보라 지칭되는 것을 혐오하는 '진짜 바보'가 또다른 한 부류다.

과거, 바보 연기로 유명한 배우들이 있었다. 배삼룡, 심형래 등은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떠오르는 개그맨들이다. 그들의 바보 연기에 몰입하여 정신없이 웃다 옆 사람을 보면 그들의 바보 연기에 맹목적으로 웃는 그도 바보로 보였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진짜 바보가 아니다.

우리는 정치를 희화화하거나 분노하게 만드는 정치인들에게서 진짜 바보의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최근 거대 야당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 모두 프로 막말러로 등극하여 연일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의 막말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당 대표는 '저사람 진짜 바보구나' 싶은 말을 하고, 원내대표는 '누굴 바보로 아나' 싶은 말을 한다. 각자 어리숙함과 뻔뻔함이라는 상반된 특징을 보인다.

당 대표는 환경미화원 체험을 하러 가서 환경미화원을 보고 "저분들은 누구죠?"라고 묻는 바보 행세를 하거나, 중소기업을 응원하러 가서 "멋진 카페가 없어서 청년들이 안 오는 것"이라는 황당한 진단을 내놓는다.


반면 원내대표는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을 일단 쏟아 낸 뒤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라고 했다"고 둘러대거나 달창의 뜻이 '달빛 창문인 줄 알았다고 뻔뻔하게 우기고 난 후 억울하다며 오히려 화를 낸다.

사람들에게 누가 더 나쁘냐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겠지만, '누가 더 싫냐' 물으면 원내대표라 대답할 것이다. 사람은 바보를 만났을 때보다 바보취급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더 화가 나기 때문이다.

오묘한 조합이지만 당 대표는 사람 '속터지게' 하는 재주가, 원내대표는 사람 '빡치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한쪽은 정치를 희화화하고 다른 한쪽은 정치를 환멸의 세계로 몰아간다. 민주당은 최고의 파트너를 만났고, 국민은 최악의 야당지도자를 만났다.

만화는 바보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내면을 통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겉치장하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바보의 삶은 위선이라기보다 진짜 고차원적인 세상 적응 방법일지도 모른다. 잘난 체하고 똑똑한 척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 부족하고 어리석은 바보에게는 무작정 신뢰하는 사람이 많다. 모두 제 잘난 맛에 살기 때문이다. 어디 좀 며칠, 아니 몇 달, 나아가 몇 십 년 바보로 사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인 듯 하다.

대부분 바보들은 스스로 바보라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느 누가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낮추고 낮춰 바보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바보입니다.” 라고 정말 바보를 자처한 사람이 있었다. 김수한 추기경이다. 나는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자가 되고 싶습니다.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난한 자,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을 만큼 가난한 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어디에서 하곤 하셨다. 모두 부자가 되고 싶은데,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서 신기하다고 한 어린이도 있었다. 그는 해외 탐방을 할 때도 늘 어려운 사람들 주변에서 기거했다고 한다. 독재 치하에서는 그는 늘 “나를 밟고 가라.”며, 힘없고 어려운 사람 편에 섰다. 그럼에도 그는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 낮춤이 선행된다며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년이 걸렸다”고 하셨다. 모두가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한 이유는 바보를 앞세운 이런 놀라운 삶의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

또 한 사람, 자신을 바보라 자처한 이가 있다. 우리가 바보로 기억하고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봉하 마을에서 거행되었던 추도식에서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믿음을 물려줍시다"라며, 사람사는 세상을 꿈꿨던 '바보 노무현'의 육성이 장내에 울려퍼지고, "끝내 이기리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노래 '상록수'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나비 1004마리가 하늘로 날았다.

슬픔과 애도를 넘어 '반칙과 특권없는 세상'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약속과, "새로운 노무현"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노무현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국회의장은 "우리는 새로운 노무현을 찾으려 합니다. 이 짐은 이제 남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보고싶습니다. 존경했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에 기해 자신의 소셜 미디어 홈피에 ''바보 노무현' 기득권동맹과 온 몸으로 부딪치며 '실용주의적 진보'의 길을 열어 나간 열혈남아였다. 우리가 그를 잊지 않는 한, 그는 살아 있다. 권력기관 개혁,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시장 존중과 복지강화, 남북 평하와 공영 등은 그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이루고자 했던 과제였다. 우리가 이 과제를 계속 추진하는 한, 그는 살아 있다. 서거 10주기를 맞이하여, 뜨거웠던 사람, 소탈했던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명복을 재차 빕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바보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애교 넘치게 부를 때 쓰는 반어적 표현이기도 하다. 고인이 되고서도 오래토록 기억되고 존경 받는 바보 김수환, 바보 노무현 그 이름들 속에 슬그머니 내 이름 하나 끼워 넣을 수 있도록 살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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