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주간프리즘 #7] 5.18 광주 민주화운동

송진희 기자 / 기사승인 : 2019-05-20 17: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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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광주 북구에 위치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서른아홉번째 맞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념식에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방송실에서 애절한 목소리로 마지막 가두방송을 진행했던 박영순(61·여) 여사의 이야기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꾸며진 기념 공연이 있었다.

 

박영순 여사는 39년 전인 1980년 5월27일 오전 2시30분 전남도청 1층 상황실 옆 방송실에서 죽음을 앞둔 시민군의 상황을 마지막까지 알린 주인공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 입니다.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호소했던 그녀의 마지막 방송은 5·18의 아픔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마지막 방송을 하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녀는 광주 상무대 보안실로 끌려가 두 달 넘게 모진 고문과 협박을 받아야 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박영순 여사는 '계엄법 위반, 내란부화 수행죄'로 1년 실형 선고를 받고 6개월 복역하다 형 집행 면제로 풀려났다.

이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박영순 여사를 위로할 때, 박영순 여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건넸는데, 편지에는 "기념식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 5·18의 진상을 꼭 규명해주시길 부탁드린다는 내용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리는 5·18유공자들을 보살펴 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김순례 한국당 의원이 5·18 유공자들을 세금 잡아먹는 괴물 집단으로 표현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5·18 유공자 중 생활고로 돌아가신 분이 60여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한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20여년 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피해자)로 인정돼 3500만원의 정부 보상금이 지급됐던 것으로 확인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주장해왔던 A 의원은 정작 자신이 5.18피해자로 인정돼 보상금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A 의원의 이름은 광주 서구 치평동 5·18기념공원 지하의 추모승화공간 벽면에도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2005년까지 5·18피해자로 인정된 4296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광주에 없었던 A 의원이 5·18피해자가 된 것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이 법은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한 5·18과 관련된 사람’을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 의원은 당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잔형면제’로 풀려났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18피해자로 인정받은 뒤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것도 A 의원과 같은 이유다.

이에 대해 A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에게 확인했는데 당시 5.18관련자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심사위원회에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해 다른 피해자가 신청하니까 일괄적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보상금과 관련해서는 반납한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한 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모르겠다. 제가 (신청)했었는지 한번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5·18관련자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광주시 관계자는 “관련법에 본인이 반드시 신청하도록 되어 있고 신청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심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피해자가 지급받은 보상금을 반납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규정이 없어 반납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작 민주화운동의 직접적 피해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한 국회의원은 3500만원의 보상금을 받고도 기억을 못한다니, 그의 주장대로 피해자 명단을 공개하고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하고, 잘못 지급된 보상금은 환수되어야 마땅할 일이다.

한켠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제1야당의 대표가 굳이 저지하는 인파를 헤치고 기념 식장에 들어 서서 보여준 '민주투사 코스프레'와 울타리를 뜯고 길이 아닌 곳으로 차를 몰아 황급히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쓴 웃음을 짓게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자신의 SNS에 자유한국당이 광주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18 기념식을 찾은 데 대해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여전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모독하고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5.18 망언에 대한 사과글을 공개한 권영진 대구시장을 언급하면서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구의 국회의원으로서 저에게 광주는 항상 가슴 한편의 묵직한 부채의식”이라며 “달구벌(대구)과 빛고을(광주)의 ‘달빛동맹’이야말로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5.18을 기념하는 우리의 자세는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로 대신하고자 한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5.18묘역에 서니 감회가 매우 깊습니다. 39년 전 그날의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광주 영령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월 광주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오늘을 살고 계시는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월 광주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께 각별한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슬 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5.18때 구속된 일이 있었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습니다.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준 힘이 됐습니다.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정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함성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는 치열한 열정과 하나된 마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광주 영령들이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성숙한 민주주의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왜곡을 막겠습니다. 전남도청 복원 문제는 광주시와 협의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합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습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 해직되고 투옥 당했습니다.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참이 거짓을 이기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광주시민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주십시오.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 서 주십시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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